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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풍성한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종종 역사와 문학 이야기도 합니다.

‘노친네’가 된 대문호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1939, L 파산면책후누락채권 loyd Arnold


“제기랄. 이제는 쓸 수 없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글을 쓰다 말고 신음했다. 머리를 벽에 박았다. 이마에서 피가 흐를 만큼 찧고, 또 찧었다. 헤밍웨이는 몇 달에 걸쳐 쓴 글을 다시 읽었다. 쓰레기였다. 구제 불능 폐기물이었다. 그는 종이를 구겼다. 그걸로 부산국제금융센터 취업 도 모자라 갈가리 찢었다. 조각을 뭉쳐 휴지통에 처박았다.
기진맥진한 헤밍웨이는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봤다.
그는 주름살에 찌든 노인을 볼 수 있었다. 빨갛게 물든 눈, 내려간 입꼬리, 바람 빠진 근육을 가진 늙은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답도 없는 노친네였던가. 멋들어진 베레모를 쓴 채 킬킬대던 청년 신혼부부 생애최초 은 이제 없었다. 톰슨 기관단총을 난사하던 혈기 왕성한 젊은이도 더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책만 내면 대란을 일으키던 노벨문학상 작가로의 위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발작하듯 울었다. 돌아선 과거가 야속하고, 우뚝 선 미래가 두려워 더 흐느꼈다.
헤밍웨이는 발을 끌며 부엌으로 움직였다. 독주나 한 잔 꿀떡 넘길 생각이었다.
이프라임그런데… 헤밍웨이는 가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그는 방향을 틀었다. 톱과 프라이팬 따위를 쌓아둔 창고 앞에 섰다. 이 안에는 얼마 전 대충 때려 박은 샷건이 있었다. 헤밍웨이는 충동적으로 이를 쥐었다. 기다란 총부리를 천천히 들어 올린 그때…. “여보!” 놀란 아내 메리 웰시가 헤밍웨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이 덕에 현실로 돌아올 소상공진흥원 수 있었다.

허무한 최후의 이유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아프리카 물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3~1954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느끼곤 합니까?”
“….”
“헤밍웨이 선생! 제발요. 성실히 말씀하셔야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런 뒤 다시 물었다. “선생. 혹시…. FBI가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다고 지금도 생각하십니까?” “그렇소.” 헤밍웨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복수의 비밀 요원이 선생의 목숨을 노린다고 보십니까?”“그 또한 사실이오.” 의사는 이에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을 또 믿지 않는군. 헤밍웨이는 그가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선생. 리서핀(고혈압 치료제의 일종)과 리탈린(각성제의 일종)을 복용해 왔지요?”
헤밍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그런 그를 둔 채 비로소 종이 위로 문장을 썼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정신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있음.


의사의 결론은 쉽고 간결했다.

돌팔이 같으니.
헤밍웨이의 소감 또한 짧고 단순했다.
아내 웰시는 당시 샷건을 들었던 헤밍웨이가 최악의 결정을 할 수 있었다며 난리를 쳤다. 헤밍웨이가 지금 병원에 잡혀있는 이유였다.
의료진은 그가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우울증 환자라고 진단했다. FBI가 자기를 쫓아다닌다고 믿는 망상증 환자라고 덧붙였다. 치료법은 간단했다. 전기 충격이었다. 헤밍웨이는 전기경련요법을 거듭 받았다. “그건 내 기억을 마구 지워버린다오. 내 머릿속을 잔뜩 어지럽힌다오.” 그가 지인에게 한 토로였다. “선생과 나는…. 내가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고 있겠지요.” 이는 지긋지긋한 치료를 마친 후 퇴원할 때 의사에게 건넨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헤밍웨이는, 퇴원 뒤 엿새 후인 1961년 7월의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나이는 예순둘이었다.
대담한 세계를 품은 한 남자는 이처럼 허무하게 눈을 감았다. 미국의 자랑, 나아가 20세기 소설계의 자부심으로 꼽힌 그는 왜 이 따위 선택을 했을까.

‘여장’을 해야했던 마초




아기 시절 어니스트 헤밍웨이, 1900, 미국 국립 기록 보관소


헤밍웨이는 1899년, 미국 시카고 인근 오크파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사냥과 스포츠를 즐기는 의사였다. 반면 어머니는 창가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길 좋아하는 성악가였다. 둘은 취미만큼 성격도 반대였다. 아버지가 외려 조용했고, 어머니가 되레 억척스러웠다.
어릴 적 헤밍웨이는 억센 어머니에게 더 휘둘렸다.
헤밍웨이는 곱상한 아이였다. 그런 그는 어머니의 취향 탓에 툭하면 여장을 해야 했다. 머리를 땋을 수 있을 만큼 길러야 했고,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도 입어야 했다. 그런 모습으로 어머니의 지인과 마주하는 수모도 거듭 겪었다. 하지만, 헤밍웨이는 예쁘장한 겉모습과 달리 거친 알맹이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장이 죽을 만큼 싫었다. 외려 그럴수록 여성성에 대한 반감만 커질 뿐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7세 시절), 1905


헤밍웨이가 두 손 모아 기다리는 때는 따로 있었다.
아버지와 단둘이서 놀 수 있는 일탈의 순간들이었다. 그날만큼은 신나게 정글을 탐험할 수 있었다. 계곡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냥총을 처음 쥔 열 살 무렵에는 너무 설레 비명을 질렀다. 헤밍웨이는 곧 아버지만큼 새를 잡을 수 있었다.“사내답게 크고 있구나. 정말 기쁘고 뿌듯한 일이다.” 그는 아버지의 이 말을 삶을 관통하는 지침으로 삼았다. 어머니는 헤밍웨이의 마초 기질을 꺾으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아들은 야성에 더 집착했다. 보란 듯 권투를 배웠고, 담배 연기에 파묻혀 당구를 쳤다. 그는 늘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치거나, 부수고 있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의외로 잘 맞는 취미가 있었다. 글쓰기였다. 그것은 종이 위로 세상을 창조하고, 계속 수정하고, 아예 흔적도 없이 불태우길 반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17년, 고등학교 졸업 후 헤밍웨이가 얻은 첫 직업은 <캔자스 시티 스타> 기자였다.
반년가량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이 직장에서 훗날 ‘헤밍웨이 투’로 불릴 담담한 문체를 익혔다.

짧은 문장을 써라. 첫 단락은 짧게 만들어라. 힘 있는 단어를 써라. 긍정적인 표현을 써라.


당시 신문사의 가르침이었다고 한다. “글 쓰는 직업을 위해 배운 최고의 규칙이었다.” 헤밍웨이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환상이 깨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923,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헤밍웨이는 들끓는 피를 어디에 쏟아부어야 하는지를 찾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전장이었다. 헤밍웨이는 미 육군과 해군, 해병에 모두 지원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약한 시력이 앞길을 막았다. 권투를 배울 때 입은 부상도 발목을 잡았다. 그에게 놓인 건 탈락 통보뿐이었다. 이 정도로는 헤밍웨이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적십자사 소속의 구급차 운전사로 재차 지원서를 냈다. 정식 군인은 아니지만, 이들과 부대끼며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직이었다.
그는 전장이 근육질 병사들의 야심이 모여 폭발하는 곳일 것으로 믿었다. 땀과 눈물, 전우애를 동력으로 매 순간 영화 같은 장면이 빚어질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낭만의 홀씨가 결코 뿌리내릴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전쟁터였다. 헤밍웨이가 이를 깨닫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온 첫날, 군수품 공장 내 폭발 사고 현장으로 갔다. 그의 첫 임무는 흩어진 노동자의 시신 조각을 찾는 일이었다.

“(…)사지가 완전히 갖춰진 시체를 샅샅이 찾아낸 후, 그 조각을 주워 모으던 일이 떠오른다.”


훗날 그의 기록이었다.

헤밍웨이는 곧 이탈리아 북부 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참호 속 군인들은 트라우마에 범벅이 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헤밍웨이는 그런 이들에게 담배나 초콜릿을 배급하는 일을 맡았는데, 어제 받은 이가 오늘 오지 않는 일도 파다했다. “소년으로서 전쟁에 뛰어들 때는 불멸이라는 큰 환상을 가질 것이다. 당신은 아니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헤밍웨이는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본다. 헤밍웨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물자를 옮겼다. 하지만 그 또한 박격포 파편을 맞고 다리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 당신이 처음으로 크게 다칠 때 그 환상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 또한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가 이러한 회고도 한 이유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918, 밀라노, Ermeni Studios


이로써 헤밍웨이가 붙잡던 마지막 환상마저 깨졌다.
헤밍웨이는 밀라노 적십자 병원에서 반년 가까이 신음했다. 발이 잘릴지도 모를, 아예 상처가 덧나 심장이 멈출지도 모를 공포에서 허우적거렸다.
낭만 따위, 야망 따위….
헤밍웨이는 전장 끝자락에서 날 것의 세상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전장 경험은 앞으로 놓인 그의 삶과 문학관을 관통하는 허무주의에 영향을 준다. 호들갑 떨지 않는 특유의 차분한 문체를 갖게끔 이끈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의 화염을 죽을 때까지 기억했다. 그는 당시 병원에서 젊은 간호사를 짝사랑했는데, 이마저도 이뤄지지 못한 비극으로 평생 잊지 않았다. 그는 이 경험을 훗날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에 녹인다.

‘잃어버린 세대’를 위하여




병원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1918


1921년, 쓰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진 헤밍웨이가 온 곳은 프랑스 파리였다.
<토론토 데일리 스타> 특파원으로 온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과 제임스 조이스 등 그 시절 문학계 거목과 마주할 수 있었다. 스타인은 전장 한가운데 있던 그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르곤 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본 그 눈에서 삶의 방향 상실, 도덕과 규범에 대한 환멸을 본 것이었다. 헤밍웨이는 그런 스타인을 가교 삼아 스콧 피츠제럴드, 파블로 피카소 등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의 쪽글 몇 편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피츠제럴드가 헤밍웨이를 이끌고 찾아간 곳이 있었다. 잘나가는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의 사무실이었다. “둘이서 무엇이든 한 번 해보시오.” 그렇게 일이 이뤄졌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헤밍웨이가 쓴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는 그와 같은 ‘잃어버린 세대’들의 바이블로 자리 잡았다. 주인공 제이크 반스는 1차 대전에서 척추를 다쳐 성기능을 잃는다. 그는 간호사 브렛 애슐리을 사랑한다. 다만, 몸이 그런 만큼 관계를 이어가는 데 한계를 맞는다. 혼란스러운 시대 속 여러 등장인물은 각자 사정으로 방황을 이어간다. 사랑과 우정, 술과 파티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이들 모두 전쟁에 오염되지 않은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손에 닿는 건 공허와 절망 뿐.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나도 벌써 그런 짓 모조리 해봤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닌다고 해서 너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있지는 않아. 그래봤자 별 것 없어.


헤밍웨이가 흘린 무심한 문장은 길 잃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다. 헤밍웨이는 생애 첫 장편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올렸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를 넘어 고향 미국까지 널리 퍼졌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있는 헤밍웨이, JFK Library


헤밍웨이는 1928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해 겨울,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만다.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었다. 헤밍웨이는 전장에서 겪은 삶의 무상함을 재차 곱씹었다. 이 무렵 헤밍웨이는 그의 참담한 경험을 눌러 담아<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내놓았다. 책 속 프레드릭 헨리는 1차 대전에서 장교로 참전한다.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그는 이를 계기로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완쾌한 헨리는 바클리를 둔 채 다시 전선으로 간다. 전투 중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겨우 목숨을 건진다. 다시 만난 헨리와 바클리는 스위스로 몸을 피한다. 하지만, 결국 헨리는 비극적 불행을 연달아 맞이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쓸쓸하게 비를 맞는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한층 더 건조해졌다.
그는 팔다리가 잘리는 일 따위, 끝내 목숨을 잃는 일조차도 큰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나는 신성이니, 영광이니, 희생이니 하는 말과 헛되다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늘 곤혹스러웠다. (…) 나는 신성한 건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영광스럽다고 하는 것들에는 영광이 없었으며 (…)


나는 특별하지 않고, 그대도 특별하지 않고, 우리에게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특별하지 않다. 부자든, 거지든, 용사든, 도둑이든 사람은 죽을 때 누구나 짐승처럼 죽는다. 헤밍웨이가 이 걸작을 통해 재차 전한 말이었다.


위험에 중독되다




스페인 내전 중 헤밍웨이, 1938, 로버트 카파


헤밍웨이는 위험에 중독된 듯 모험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계속해 사건사고 현장에 달려들었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1936~1939) 당시 네 차례에 걸쳐 스페인 땅을 밟았다. 그는 종군 기자가 돼 현장을 누볐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1940)를 쓰게 된다. 헤밍웨이는 촌극에 가까운 일도 벌였다. 대표적인 게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터지자 독일 잠수함을 때려잡겠다며 의용대를 꾸린 일이다. 당연히 대장 놀이만 했을 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작은 배에 탄 채 나흘 밤낮을 홀로 황새치와 싸운 늙은 어부, 잡은 고기를 배 위로 끌어 올릴 수 없어 뱃전에 묶어두자 결국 상어들이 이를 먹어 치운 이야기. 이건 쿠바 해안이 전해 준 멋진 이야기라오. (…) 내가 제대로 해낸다면 훌륭한 이야깃감이 될 거요. 책 한 권이 될 이야기 말이야.”


1939년 2월, 헤밍웨이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등을 편집해 준 퍼킨스에게 이러한 글을 썼다.

쿠바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좋아한 그는 종종 그곳 해안가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 헤밍웨이는 한 열정적인 어부와 친해졌고, 그에게 들은 이야기가 감명 깊어 편지를 쓴 것이었다. 이는 어부는 술안주 삼아 꺼낸 경험담이었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갑자기 영감이 움텄다며 “소설로 쓰고 싶으니 허락해 주시오. 보상은 충분히 하리다”라며 방방 뛰었다. 이후 헤밍웨이는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길 수 있었다. 8주 간의 시간 끝에 중편 소설 한 편이 탄생했다. 그게 바로 20세기 미국 문학을 개척한 작품, <노인과 바다>(1952)였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85일째 되는 그날, 비로소 자기 생애에서 가장 큰 청새치를 본다. 그는 이미 지쳤으나 녀석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나긴 사투 끝에 드디어 작살을 꽂아 죽인다. 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몰려오고, 녀석들은 결국 청새치를 갈가리 뜯어먹고 만다. 지친 노인이 뭍에 닿을 때쯤 그의 전리품은 앙상한 뼈밖에 없는 상태였다. 탈진한 노인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는 젊을 적 최고로 솜씨 좋은 어부였다. 그렇게 잠든 노인은 다시 사자 꿈을 꾼다.


“(…)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의 이 말이 사실상 작품 주제였다. 헤밍웨이는 여태 잃어버린 세대들의 세상을 글로 썼다. 그런 그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이처럼 ‘길 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나름의 결론을 전했다. 투쟁이었다.운명과 맞서는 일이 지난한들, 그렇게 해 빚어낸 결과물이 보잘것없다 한들, 저항하는 이상 인간은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낚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1928, JFK Library


이 소설이 실린 <라이프>는 5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역사적인 성공 후 헤밍웨이는 그 어부를 다시 찾았다. 밥 한 끼와 술 한 잔 값만 내달라고 한 그에게 2만 달러를 건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남자의 속마음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0, John F. Kennedy library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
헤밍웨이도 그랬다.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짓을 밥먹듯 벌인 헤밍웨이였지만, 사실 그는 무척 꼼꼼하고 섬세한 면도 갖고 있었다. 때때로는 매우 헌신적인 면도 보였다. 그의 무리수 중 상당수는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헤밍웨이의 이중성을 엿본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는 그를 향해 “가슴에 털 난 계집애”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외로움도 타고, 자제력도 약한 편이었다. 아내만 네 명을 둘 만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결혼 중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뒤엉켜 놀곤 했다.
헤밍웨이가 미국의 자랑으로 우뚝 설 무렵, 업보인 양 몸과 정신은 황폐해져 있었다.
헤밍웨이는 노화가 싫었다. 시간은 야속했다. 6피트(183cm)에 이르렀던 키는 점점 줄었다. 그렇게 좋아한 사냥과 복싱을 제대로 못 할 만큼 호흡도 가빠졌다. 무엇보다도, 문장이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어느새 헤밍웨이는 가짜 부고 기사의 소재로 다뤄질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미국과 쿠바 등을 오간 헤밍웨이는 아이다호주(州) 케첨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숨진 직후 유족들은 그의 죽음을 사고사로 발표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그는 케첨의 한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가 빚은 마지막 얘기 또한 이토록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로 불린다. 원래는 ‘계란이 완숙되는’이라는 형용사지만, 지금은 ‘냉혹한’, ‘비정한’ 등 뜻을 품은 문학 용어로도 칭해진다. 이는 꾸밈 없이 건조하고 진지하게 문장을 이어가는 기법이다. 헤밍웨이는 날것의 세상,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을 직접 봤기에 외려 차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노병의 낡은 군화가 젊은 장군의 훈장보다 호소력이 짙은 것과 같은 원리였다.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Pardon me for not getting up).”


헤밍웨이의 묘비명이었다. 그는 이렇게 죽으면서까지 담담했다.

한편 헤밍웨이 사후 미국 FBI가 실제로 그를 사찰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말년의 헤밍웨이는 FBI가 자신을 쫓아다닌다고 말했는데, 이것만큼은 남성성 과시를 위한 허풍이 아닌 진실로 확인됐다.

<참고자료>

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마트비즈니스
디 에센셜 :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