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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자 싱글 경기에만 관심이 있다. 빙상장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좋은 자리는 오전에 남자 싱글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 다 차지한 후이다.
물건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좌석들(특히 맨 앞좌석)이 종종 있다. 오전에 와서 남자 싱글 경기를 본 사람들이 2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다가, 여자 싱글 마지막 전 그룹 정도의 경기가 시작될 때에야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흠, 나라면 이런 메모를 원가계 남겨둘 것 같다. "3시에 들어옵니다. 그때까지는 마음껏 앉아도 됩니다."
직관 중에 가장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작년 1월, 종합선수권대회 때 일어났다.
작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직관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정말 이상한 자리도 겨우 잡았는데,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까, 경기를 마친 김채연 선수가 내 옆에서 다 파산채권자 른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전날 쇼트에서 큰 실수를 한 김채연 선수는 그날 프리 경기를 완벽하게 해내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한 뒤 빙판 위에서 울먹였다. 도저히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절박해진 나는 염소 목소리로 말했다.
특가이벤트"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일단 말을 하고 나니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내 휴대폰에 셀카를 남겨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내 얼굴이 아마도 불타는 고구마 같았을 것이다.
올해 랭킹전은 쇼트는 못 가고 프리만 보러 갔다. 같이 사는 고양이 고로가 그 전주에 방광암 판정을 받았고, 그 주 월요일에는 색전술을 받은 한국장학재단 생활비대출 신청 참이었다. 의사는 이번 시술 결과를 보고 한 달 후에 한 번 더 시술을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고 했다. 우리는 슬픔에 잠겨서 다른 무엇도 할 엄두가 안 났다.
프리 경기를 보러 가자고 말한 건 남편이었다.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아니었다. 어떤 선수들의 경기가 끝났을 때는 마음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주택담보대출문의
가끔 (뻔한) 생각을 한다. 피겨 경기야말로 인생에 대한 은유라고. 아무리 넘어지고 굴러도 끝까지 경기를 해야 한다. 이미 너무 망한 경기라 할지라도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음 점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일단은 몸을 날려야 한다. 그건 무섭고 외로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선수들은 경기 후에 울먹이는 건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말한다. "보러 오길 잘했지?" 나와 남편과 고로의 다음 점프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실패하게 될까? 실패? 아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래서 멋지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지. 게다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편을 보며 대답한다. "응 오길 잘했어."
[손보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