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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40분이 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현미밥에 배춧국, 김치와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가 전부다. 때때로 반찬가게에서 나물을 사다가 비빔밥을 해 먹거나, 친구가 마파두 취업정보사이트 부밥을 할 때도 있다. 점심을 먹고는 4시까지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솔직히 매일 산책하는 건 귀찮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이다. 심지어 이 건물 자체가 가파른 산꼭대기에 있다. 언덕을 포함하면 사실상 24층이나 마찬가지다.
공원에서 만 광주한국주택공사 난 ‘누군가의 방’…나무덱 벗어난 ‘새로운 길’
걷다가 마무리로 들어간 동네 김밥집에서의 ‘뜻밖의 소득’까지…
산책은 언제든 탐험이 된다, 내일도 나가기 싫다며 괴로워하겠지만
오늘같이 추운 날은 더 갈등이 생긴다. 아직 카드연체신용불량자 해가 있는데 영하 8도다. 창문 밖을 보니 눈도 수북이 쌓여있다. 이런 날도 나가야 하나 싶지만 그동안 들인 습관이 무섭다. 실외 배변을 하는 개처럼 때가 되면 머리에 ‘산책!’ 버튼이 켜진다. 지금 당장 시베리아로 끌려가도 괜찮을 정도로 중무장을 했다.
귀찮아하며 꾸역꾸역 나온 것과 달리 밖으로 나오니 벌써 약간 재미있다. 좁은 방구석에 카드대금 하루연체 서 벗어난 느낌이다. 나와서 어디로 갈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딱히 정해두진 않는다. 뭔가 살 게 있으면 핑계 삼아서 마트나 시장에 가고, 반납할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간다. 그게 아니면 그냥 동네를 배회한다.
매일 나오다 보니 작은 변화들도 눈에 잘 보인다. 불이 한 번 난 뒤로 시커멓게 그을린 빌라의 창문이 오늘은 말끔하게 닦인 것을 봤 무서류인터넷대출 다. 그 옆의 배달 전문 중국집은 늘 오토바이가 몇 대씩 서 있었는데 오늘은 문이 닫혀 있다. 무슨 일이 있나? 인도로 눈을 돌려본다.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평소에 닫아두던 제설도구함이 열려있다. 안에 뭐가 들었나 괜히 한 번 들여다본다. 산 쪽 도로에서는 커다란 DSLR 카메라를 든 서너 사람이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며 내려오고 있다.
이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을 하나하나 열심히 본다. 이건 뭐 당선만 안 되었지 동네 통장이나 마찬가지다. 동네에서 뭔가 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제출할 증거도 많을 거다. 언제 가도 만만한 공원으로 가본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낡은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계단을 서른 개 정도 오르자 나무둥치에 올려놓은 망가진 빨간 의자가 보인다. 절대 구청에서 만든 비주얼이 아니다. 동네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앉을 의자를 놓아둔 것 같다. 겸사겸사 버려진 의자도 처리하고 말이다. ‘난 올라오면 이때쯤 다리가 아프더라고, 그럴 때 여기 앉아서 쉬어가면 얼마나 좋아, 캬, 경치도 좋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기 앉아서 보온병에 담아온 믹스커피를 마셨을까? 나도 앉아보고 싶지만 어제 내린 눈이 잔뜩 쌓여있다. 다음에 앉아보기로 하고 다시 걷는다.
‘아니, 이게 뭐람’ 구청에서 설치한 매끈한 운동기구들 옆에 재질과 연식이 다른 윗몸일으키기 기구가 보인다.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하게 벗겨져 있고 등받이 부분이 다 터져있는 걸 보니 몇십년은 묵은 물건 같다. 누군가 자기 집에 있던 것을 갖다 놓았거나 이 또한 버린 걸 주워온 게 분명하다. 갖다 놓는 거로 부족해 나무 그루터기를 다리 삼아 못을 쳐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놨다. 회색의 깔끔한 공식 운동기구와 함께 있는 걸 보니 오렌지 사이에 낀 찌그러진 낑깡 같다. 옆으로 가니 또 다른 의자가 보인다. 컴퓨터 책상에 놓을 법한 바퀴 달린 의자다. 그 옆 벚나무에는 못을 쳐서 시계까지 박아놨다. (불쌍한 벚나무!) 윗몸일으키기 도구에 회전의자, 나무에 박아 놓은 시계까지 이 정도 거친 일관성이면 한 사람이 한 거다. 누군지 몰라도 근린공원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놨다.
오르막길을 좀 더 올라가니 정자가 나온다. 역시나 시계와 거울이 붙어있고 커다란 훌라후프도 몇 개 걸려있다. 바닥에는 스티로폼을 잘라서 만든 방석도 몇 개 있다. 정자의 나무 기둥이 사람의 손때가 타 반들반들 빛난다. 여기서는 나무덱이 깔린 길이나 좁은 숲길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오늘따라 저 멀리 작고 좁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한 번 보이면 충동을 참을 수 없다.
‘탐험!’
신나게 새 길 따라간다. 풀숲 사이로 아주 좁은 길이다.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철근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방수천을 어설프게 걸어 놓은 설치물이 보인다. 또 누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놨을까? 하고 안을 들여다보자, 으악! 화장실이었다. 흙바닥 위에 납작한 돌 두 개가 발 받침인 양 올려져 있고 그 가운데는 막 누가 흙으로 덮은 양 불룩하다. 심지어 옆엔 휴지까지 걸려있고 그 아래엔 까만 비닐봉지가 자리 잡고 있다. 못 볼 걸 봤다. 여기가 백두대간 한중간도 아니고 마려우면 집에 가라고!
뒷걸음쳐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그러고도 충동을 참지 못하고 또 다른 길로 가봤다.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고 바닥도 울퉁불퉁하다. 쌓인 눈 사이로 나무뿌리나 바위도 툭 튀어나와 있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탐험의 재미다.
“딱두두두두??”
갑자기 나무에 못을 두들겨 박는 소리가 울려 그 자리에 정지했다. 그대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아주 작은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세차게 쪼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오색딱따구리와 달리 배에 빨간 털이 없고 크기도 참새만 하다. 저게 쇠딱따구리인가?
가만히 서서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또 딱딱딱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도 나무에 거꾸로 붙은 쇠딱따구리가 있었다. “딱두두두-” 앗, 내 앞에도 있었다. 또 다른 한 마리가 내 귀 바로 옆으로 붕-하고 날아 지나갔다. 날개가 일으킨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걸까? 아니다. 눈이 가득한 공원에서 내가 하얀색 패딩을 입고 가만히 있으니 위장이 된 거다.
‘이대로 영원히 보고 있을 수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10분쯤 지나니 다리가 아프다. 좁은 길을 내려온다. 걸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역시 산책의 마무리는 간식이다. 동네 김밥집에 들어가 참치김밥과 멸치김밥을 포장 주문했다.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주인아주머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구성진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창문 밖은 눈으로 온통 하얗다.
“눈이 많이 왔네요.”
정적을 깨고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엄청 왔어요” 하고 내가 대답하자
“높은데 살아서 힘들어서 그렇지, 눈 오면 예뻐.”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아주머니는 꾹꾹 눌러 김밥을 정성스럽게 싼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산에 갔다 오셔?”
아주머니가 또 물어보신다. 아무래도 정적이 불편하신 것 같다.
“아뇨, 집에서 나왔어요.”
“아, 복장이 그래서.”
솔직히 대화가 편하지는 않다. 아주머니는 대체로 말을 부정적으로 하시는 편이라 평소엔 김밥을 시키고 다른 데 있다가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은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오늘 산에 사진 찍으러 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대화를 이어본다. 바로 후회했다.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거나, 그러다 다치면 민폐다 같은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텐데 괜한 짓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뜻밖으로 “찍을 거 많겠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덧붙였다.
“나무들 모양이 하나하나 다르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멍해진다. 맞다. 은행나무와 목련나무와 소나무는 모두 모양이 다르고 눈이 쌓이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세상에 나만 이거저거 보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도 나무를 관찰해왔다니. 갑자기 가까운 사람처럼 친근감이 느껴진다.
따뜻한 김밥을 들고 가게에서 나왔다. 역시 나오기만 하면 바깥세상에서는 언제든 볼 것이 있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오늘은 뜻밖의 소득이 많았다. 도시의 산책은 언제든 탐험이 될 수 있다. 내일은 또 나가기 싫다고 괴로워하겠지만 말이다.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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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
신나게 새 길 따라간다. 풀숲 사이로 아주 좁은 길이다.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철근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방수천을 어설프게 걸어 놓은 설치물이 보인다. 또 누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놨을까? 하고 안을 들여다보자, 으악! 화장실이었다. 흙바닥 위에 납작한 돌 두 개가 발 받침인 양 올려져 있고 그 가운데는 막 누가 흙으로 덮은 양 불룩하다. 심지어 옆엔 휴지까지 걸려있고 그 아래엔 까만 비닐봉지가 자리 잡고 있다. 못 볼 걸 봤다. 여기가 백두대간 한중간도 아니고 마려우면 집에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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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두두두두??”
갑자기 나무에 못을 두들겨 박는 소리가 울려 그 자리에 정지했다. 그대로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아주 작은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세차게 쪼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오색딱따구리와 달리 배에 빨간 털이 없고 크기도 참새만 하다. 저게 쇠딱따구리인가?
가만히 서서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또 딱딱딱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도 나무에 거꾸로 붙은 쇠딱따구리가 있었다. “딱두두두-” 앗, 내 앞에도 있었다. 또 다른 한 마리가 내 귀 바로 옆으로 붕-하고 날아 지나갔다. 날개가 일으킨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걸까? 아니다. 눈이 가득한 공원에서 내가 하얀색 패딩을 입고 가만히 있으니 위장이 된 거다.
‘이대로 영원히 보고 있을 수 있어’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10분쯤 지나니 다리가 아프다. 좁은 길을 내려온다. 걸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역시 산책의 마무리는 간식이다. 동네 김밥집에 들어가 참치김밥과 멸치김밥을 포장 주문했다.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주인아주머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구성진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창문 밖은 눈으로 온통 하얗다.
“눈이 많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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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데 살아서 힘들어서 그렇지, 눈 오면 예뻐.”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아주머니는 꾹꾹 눌러 김밥을 정성스럽게 싼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산에 갔다 오셔?”
아주머니가 또 물어보신다. 아무래도 정적이 불편하신 것 같다.
“아뇨, 집에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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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 모양이 하나하나 다르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멍해진다. 맞다. 은행나무와 목련나무와 소나무는 모두 모양이 다르고 눈이 쌓이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세상에 나만 이거저거 보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도 나무를 관찰해왔다니. 갑자기 가까운 사람처럼 친근감이 느껴진다.
따뜻한 김밥을 들고 가게에서 나왔다. 역시 나오기만 하면 바깥세상에서는 언제든 볼 것이 있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오늘은 뜻밖의 소득이 많았다. 도시의 산책은 언제든 탐험이 될 수 있다. 내일은 또 나가기 싫다고 괴로워하겠지만 말이다.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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